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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순국지 남해 관음포 "이락사(李落祠)"

by 영도나그네 2015. 7. 15.

지인들과 함께한 지리산 자락의 "칠불사" 나들이를 마치고 부산으로 귀가하는 길에는 "보물섬 남해" 를 들려 가기로 하고 "남해대교" 를 지나 "남해창선대교" 가는 길목에 있는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 이자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관음포 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전몰유허지" 를 들려보기로 했다. 

 

이곳 남해의 "관음포" 는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서 "정유재란" 으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풍신수길" 의 병사소식에 철군하게 되었고, 경남 사천에 머물고 있던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선 500여척이 노량앞바다로 도망가는 것을 보고 이순신 장군이 직접 진두 하여 왜선 400여척을 격침시키고 나므지 50여척이 "관음포" 로 도망가는 것을 끝까지 추격하는 과정에서 왜군의 총탄에 맞아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이 장렬한 최후를 마친곳이기도 하다.

 

 

 

 

 

남해의 "관음포" 에 있는 "이 충무공 전몰유허(李 忠武公 戰歿遺墟) "  는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를 벌린 "노량해전" 에서 순국한 곳이고 이곳으로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맨처음 안치한 곳이기도 하며, 이곳 입구에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인 "전쟁이급하다, 내가죽었다고 알리지마라.(戰方急 愼勿言我死-전방급 신물언아사)" 라는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남해 관음포의 "이충무공 전몰유허지" 에는 주차장이 잘만들어져 있고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해방후 남해군민 7천여명이 자진헌금하여 만든 정원과 참배도로가 나타나고,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이 새겨진 비석이 서있고, 노량해전의 요약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반송들이 늘어서 있는 참배도로를 따라가면 1973년 4월에는 "사적제232호" 로 지정되된 "대성운해" 라는 "유허비각" 이 있다.

 

 

 

 

 

 

 

 

이곳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는 1598년 (선조31년) 11월 19일 아침 이순신 장군이 왜적의 총탄에 순국한 곳이고,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이곳으로 옮겨왔다는데서 "이락사(李落祠-충무공의 목숨이 떨어진 곳)" 라고 별칭으로 부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순조 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이항권이 대제학 "홍석주" 의 글씨로 "진충보국(塵忠報國)" 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 를 세웠고 "이락사(李落祠)" 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대성운해(大星隕海)-큰별이 바다에 떨어지다)" 는 친필 휘호를 내렸다고 한다.

 

 

 

 

 

 

 

 

"이락사" 를 지나  황톳길로 잘 만들어진 솔밭길을 따라 약 500m 언덕에는 이순신 장군이 당시에 순국한 "노량해전" 의 현장을 볼수 있는 "첨망대(瞻望臺)" 가 만들어져 있고 올라가는 길에는 "포토존" 이 만들어져 있어 노량해역을 잠시 볼수 있고, 남해화력 발전소도 보인다.

 

 

 

 

 

 

 

 

 

 

 

 

이곳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첨망대" 는  "노량해전도" 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고, 장군이 순국하신 옛자리를 보면서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91년 2월 팔작지붕 2층으로 건립하였고, 첨망대 누각에 올라 보이는 노량해역은 지금은 무심한 바닷물만 보이고 저멀리는 우리나라 산업의 동력인 "광양제철소" 가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은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끈 마지막 해전지인 동시에 이 충무공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애국충정이 깃든곳이기도 하였다.

 

 

 

 

 

 

 

"첨망대" 를 보고나서 입구 주차장으로 나오면 이곳에 "이순신 순국공원 조성사업" 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앞으로는 이곳이 우리역사에 길이 남는 유적공원이 될것 같았다. 

 

 

                     여기서 잠깐 "노량해전" 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노량해전(露梁海戰)" 은 1598년 (선조31년)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일본수군과 벌인 마지막 해전이며 이 해전을 끝으로 7년간 계속되었던 조선과 일본의 전쟁은 끝나고 이순신 장군도 이때 왜군의 적탄에 맞아 전사한 전쟁이었다.

 

이 해전에서 400여척의 전선을 격파당한 왜군은 남해방면으로 도망을 쳤는데, 이순신 장군은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추격을 하였고, 이 추격전에서 불행히도 적탄에 맞아 순국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의 죽음을 알리지 말고 끝까지 추격하여 적을 격파하라는 유언에 따라 추가로 왜선들을 격침시키게 되었고 왜군은 겨우 50여척의 남은 배로 도망친 해전이기도 하다.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지를 관람하고 나서 장소를 옮겨 "보물섬 남해" 의 또다른 먹거리인 "죽방렴" 에서 잡는 싱싱한 "남해 죽방멸치회" 로 유명한 남해 창선교 근처 "지족리" 에 있는 음식점에 들려 "죽방멸치회" 와 함께 막걸리 한잔으로 1박2일간의 지인들과의 친교의 시간을 모두 마칠수 있었다.

 

이번에 지인들과 같이한 1박2일간의 지리산 자락의 "칠불사" 참배와 함께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 에서 순국한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지 참관은 또다른 역사 알기와 더불어 귀한 충전과 힐링의 시간을 가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