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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안(西安)여행- 당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있는 "화청지(華淸池)"

by 영도나그네 2015. 8. 19.

이번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중국의 "시안, 구련산, 태항산 대협곡" 등을 4박6일간의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첫날의 여행일정은 당나라 현종과 중국의 4대 미인중의 한명이었던 "양귀비" 와의 아름다운 로맨스와 슬픈 사연이 숨어있는 "화청지(華淸池)" 관광을 하였다.

 

 "화청지(華淸池)" 는  중국 시안 동쪽 "여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며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온천지역이고, 주나라때는 "여궁", 진나라때는 "여산탕", 한나라때는 "이궁", 당나라때는 "화청궁(華淸宮)" 으로 불리어 지다가 지금은  "화청지(華淸池)" 로 불리어 지는 곳이기도 하다.

 

 

 

 

 

"화청지(華淸池)" 에 들어서면 큰 연못인 "화청지(華淸池)" 가 눈앞에 펼쳐지고 "당현종" 과 "양귀비" 가 즐기던 여러곳의 온천 앞에는 이제막 온천을 마치고 나오는 형상의 "양귀비상" 이 아름답고 풍만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화청지(華淸池)" 앞의 정문에는 아직도  "화청궁(華淸宮)" 이란 현판이 붙어있고, 정문 앞 광장에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한 조각상 분수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화청지(華淸池)" 의 "부용원"이 넓게 펼쳐지고,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배경으로 사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화청지(華淸池)" 는 18만평이나 되는 넓은 면적이라 이곳에는 전체를 돌아볼수 있는 관람차가 운행되고 있었으며, 4문, 10전, 4루, 2각, 5탕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사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며 "당현종" 과 "양귀비" 가 자주 즐겨 사용했던 5개탕으로 이루어진 광장에는 "양귀비" 가 "해당탕" 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형상의 "양귀비상"이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도 수많은 관람 인파들이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담고 있었다.

 

 

 

 

 

 

 

먼저 "양귀비" 가 이곳에서 실제 목욕을 했다는 "해당탕(海棠湯)" 과 "당현종" 이 목욕을 했다는 "연화탕(蓮華湯)" 을 둘러 보았다.

 

평소 좋아했던 "해당화" 모양의 "양귀비" 의 목욕탕은 작고 아담한데 비하여 "당현종" 의 전용 목욕탕은 역시 큐모가 크서 왕의 위엄을 느끼는 것 같았다.

 

 

 

 

 

 

 

 

또한 이곳 "화청지(華淸池)" 에는  "당현종" 과 "양귀비" 가 같이 목욕했다는 "성진탕, 상식탕" 등 이 남아 있었고, 그당시의 "양귀비" 와 "당현종" 의 사랑이 무러익는 온천문화를 엿볼수 있는 시간이 된것 같기도 했다.

 

 

 

아직도 이곳 "화청지(華淸池)" 에는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43도의 온천수가 샘솟고 있어 이곳이 진정한 온천지역임도 알수 있었다..

 

 

 

 

 

 

 

 

또한 이곳 "화청지(華淸池)" 에는 "당태종 온천 명비" 가 세워져 있었고, 이곳 시안지방의 특산품인 수령이 수백년된 "석류나무" 에서도 붉은 석류들이 주렁주렁 달렸으며, 특히 나무아래는 대추나무, 나무위에는 감나무를 접붙여 놓아 평소에 감과 대추, 석류를 좋아했다는 "양귀비" 의 흔적을 엿볼수 있는 것 같았다.

 

 

 

 

"당현종" 이 "양귀비" 에게 하사한 "해당탕" 에서 목욕을 하고나서 이곳에 있는 누각에서는 "양귀비" 가 젖은 머리를 말리든 곳이라 하고, 또한 앞에보이는 건물에서는 "박거이" 가 쓴 "당현종과 양귀비" 의 로맨스를 담은 "장한가"를 현대판 무용으로 연출한 "장한가무쇼" 도 열린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당나라 "현종" 과 "양귀비" 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연을 소개해본다.

 

"양귀비" 의 본명은 "양옥환" 이고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나서 숙부밑에서 엄격한 가정교육과 함께 "사서삼경" 등을 배우며 총명함을 나타내었고, 16세때 당현종의 아들 "수왕" 의 비(妃) 가 되었다.

 

또한  당현종은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당현종" 의 마음에 맞는 여인들을 전국에서 물색하게 되었데 마침 아들인 "수왕" 의 비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수왕"이 있는 곳으로 행차길을 나서게 되었다.

 

"양귀비" 를 처음본 당현종은 첫눈에 반하여 아들에게 다른 여인을 비(妃)로 삼도록 하고 "양귀비"를 현종이 있는 궁중으로 들어오게 하였고, 궁중에 들어온지 6년만에 "귀비(貴妃)" 로 책봉되어 본격적인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현종" 의 마음을 사로잡은 "양귀비"는 그녀의 친척들을 중요 요직에 발탁하게 하였으며, 그중에서 양귀비의 양아들로 들어온 "안록산" 이 "양귀비" 의 친척들의 국정의 전횡에 반기를 들게 되었고,  마침내 "안록산의 난" 을 이르키게 되어 "당현종" 은 피신을 하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양귀비" 의 탓이라 하며 "양귀비" 를 죽이지 않으면 "안록산을 난" 을 진압하지 않겠다는 군사들의 간언에 눈물을 머금고 "당현종" 은 그토록 사랑했던 "양귀비" 를 자진하도록 명령 하였고, "양귀비" 가 자살하는 것을 그져 바라만 볼수 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당나라 6대 임금인 "현종" 과 "양귀비" 의 아름답고 슬픈사연이 깃든 "화청지(華淸池)" 관람을 끝내고 다음 여행지 '진시황릉"과 "진시황 병마용갱" 관람을 위해 장소를 이동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