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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김유신 장군묘 참배

by 영도나그네 2019. 9. 25.

지난 추석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둘러본 경주 양동마을을 보고 나오면서 근처에 있는 신라시대 출신성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묘" 를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유신" 은 "금관가야" 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 의 "증손" 으로 아버지는 현재의 "충북 진천태수" 를 역임한 "김서현" 으로 "신라 진평왕" 17년에 탄생했으며, 젊어서는 "신라의 화랑" 으로 수많은 낭도들을 이끌며 명산대천에서 수련을 하면서 기상을 키웠다고 한다.



"배롱나무꽃" 들이 활짝피어 있는 "김유신 장군 묘" 는 "경주시 충효동" 의 "송화산(松花山)"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져 내려온 전망이 좋은 구릉위의 울창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김유신 장군 묘소 주차장에 도착하여 매표소 에서 입장권을 교부 받아 묘소가는 길이 나오며, 오른쪽으로는 김유신 장군의 성지가 있고, 바로 언덕배기로 올라서면 김유신 장군 묘소가는 길이 나온다.



"김유신 장군 묘소" 입구에는 1933년 "정인보" 가 지었다는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장군 신도비(神道碑)" 가 세워져 있었으며, 이 비석은 "삼국통일" 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 (595-673) 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神道碑)" 이고, 현재의 비석과 비각은 1966년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뒤덮혀 있는 묘소 입구에는 "흥무문(興武門)" 이 있고, 묘소로 가기위해서는 이 문 옆으로 난 쪽문을 통해 묘소에 올라가는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배롱나무꽃" 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김유신 장군 묘소" 가는길은 울창한 솔숲 향기를 맡으면서 걸어볼수 있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길이기도 했다.



묘소 입구에는 왼쪽편에 "신라 태대각간 김유신묘"  라는 크다란 비석과 함께, 오른쪽에도 "개국공 순충장열 흥무왕 묘(릉) " 라는 크다란 비석이 나란하 서 있었다...



이곳에 있는 "김유신 장군" 의 묘는 여느 신라왕릉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봉분이 크고, 난간석과 조형물들이 잘 만들어 져 있는것 같았다.



"김유신 장군묘" 는 밑둘레 50m, 지름 18m, 높이 5.3m의 왕릉에 버금가는 규모이고, 아래쪽 신상석에는 12지신상을 새긴 보호석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날 찾아본 "김유신 장군묘" 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 에 대해서 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며, "김유신" 은 "고구려, 백제, 신라" 의 삼국을 통일하는데 가장큰 업적을 남긴 명장이고, 신라의 삼국통일에 "김유신" 과 더불어 큰공을 세운 사람이 "태종무열왕" 인 "김춘추" 임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진덕여왕" 이 후사없이 훙거하자 "김유신" 이 "김춘추" 를 "태종무열왕" 으로 옹립하였고, 신라 역사상 첫번째의 "진골" 출신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유신 장군" 은 "삼국통일전쟁" 의 신라군 총수로서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하고,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어 삼한통일의 대업을 이룩하였고, 고구려를 통합한 이후 "태대각간" 에 봉해 졌으며, "문무왕" 13년에 7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남에 따라, "흥덕왕" 10년에 그 공적을 기려 "흥무대왕(興武大王)" 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울창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경주의 "김유신 장군묘" 는 휴일을 맞아 많은 참배객들이 가족들과 함께 찾고 있었으며, 다시한번 삼국통일의 그 기상을 느낄것 같았다...